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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의 중요성



딸 아이가 창문 밖으로 구름이 살짝 낀 늦은 오후의 하늘을 본다. 차가 코너를 돌고, 아이는 고개를 뒤로 돌려 계속 같은 곳을 본다. 아이는 구름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이야기하고,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던 나는 놀라며 감동받는다.


우리 가족이 크레용을 쥐고 낡은 식탁에 둘러 앉았을 때, 나는 팔꿈치 쪽에 둔 베이비 모니터로 자고 있는 막내를 보며 큰 딸에게 무엇을 색칠하는지 물었다. 딸은 그 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뭘 하고 놀았는지 이야기한다. 나는 딸이 수퍼히어로를 좋아한다는 것조차 몰랐기 때문에 다시 놀란다.


그리고는 딸과 소파에서 책을 읽었다. 딸이 책을 가져와서 내게 읽어준다. 너덜너덜한 책을 내게 쭉 한 번 읽어준 다음, 작은 손에 쥔 책 속 캐릭터들을 사용해 자신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날 저녁 나는 부엌에서 쿠키를 굽는다. 딸은 의자와 앞치마를 달라고 하고 내 옆으로 기어오른다. 밀가루, 베이킹 소다 등을 섞는 것을 돕는다. 다 마치고 오븐에 넣은 뒤, 딸은 믹싱 볼 몇 개와 주걱을 거실로 가져가서 다른 것을 만드는 시늉을 한다. 나는 문간에 서서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딸이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듣는다.


색칠 놀이를 하면서 우리는 어려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조금 전에 화를 냈을 때를 이야기하자 딸은 불편해 한다. 나는 딸이 내게 대놓고 말하기를 주저하는 것을 눈치채고 뭐든지 다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나는 내 행동이 딸에게 미치는 영향을 크게 느끼지만, 곧 우리는 그 일은 뒤로 하고 키득거리고 논다.


내 아이들이 각자 자신만의 특별한 개인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기가 참 쉽다. 콧물을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시중을 들어주고, 점심 먹은 것을 치워주고, 놀면서 페이스북을 보게 해주고,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게 허락해주는 것은 쉽다. 육아의 이런 일상적인 일들 말고, 더 깊은 곳에서 함께 해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함께 TV를 보거나, 간식을 먹거나, 방 구석 책을 보는 곳에 같이 있어주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옆 방에서 아이들을 보며 설거지를 하거나,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평화롭게 커피를 마시며 보는 대신 말이다.


짧은 순간의 어수선함, 혼란, 싸움, 혹은 엄마가 필요한 상황을 나는 간단하게 모른 척 하고 등을 돌리게 된다. 나도 내 공간이 필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조용한 순간들도 있다. 이런 조용한 순간들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아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익힐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부모로서 우리는 조용한 순간이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막상 조용해지면 지루하게 흘려버린다. 우리는 무작위로 주어지는 이런 시간을 그저 채워버린다.


나는 아기가 방 구석의 플라스틱 테이블에서 놀고 있고, 맏이가 좋아하는 책들과 간식에 둘러 싸여 소파 위에서 담요를 덮고 있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부드러운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에 내 손가락이 닿을 때 들리는 탁탁거리는 소리를 즐기고 있다. 호랑이 캐릭터가 노래를 부르자 아기는 태평하게 놀며 그 노래에 맞춰 ‘말’을 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둘 다 책 읽는 것을 그만두고 열심히 놀고 있다. TV에 나오는, 교실에서 풍선으로 로켓을 만드는 실험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 그 프로그램이 끝나자 안아달라며 나를 부른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들을 안아주러 일어난다.


최근 나는 아이들이 조금 지루해지게 하기로 했다. 나는 TV 프로그램 하나가 끝나면 늘 바로 다른 것을 틀어주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저녁을 다 먹으면, 가서 남편과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뭔가 할 일을 찾아보라고 한다. 남편에게 아이들의 상상력이 정체되지 않고 계속 자라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아이들의 인생의 매 초가 스크린, 장난감, 이야기로 가득차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내 아이들이 지루해하길 원한다. 그게 아이들에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게도 좋은 일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jennifer-s-white/being-bored_1_b_9129234.html?utm_hp_ref=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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