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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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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토로라에 근무함
최고 책임자 레스터 호간이 핵심 엔지니어를 끌고 실리콘밸리 페어차일드로 떠남
모토로라는 페어차일드를 영업비밀 유출 등의 혐의로 제소함
이런 과정에서 강박사는 한국행 결심.
2.
한국에서 모토로라 공장하고 똑같이 설계하려고 함.
다만 강박사는 표면상 '기술지원'책임자로만 활약, 모토로라 출신인 그가 대외로 유출하면 안됐음
김규한 켐코사장과 강기동박사가 총 100만달러로 한국반도체 설립.
강박사가 설계한 공장은 3인치웨이퍼를 가공해 칩을 만들고 테스트하는 진짜 반도체 공장이었다. 당시 한국에 진출한 외국반도체업체들은 반도체제작의 마지막 공정인 금속 캔을 씌우는 임가공 공장에 그쳤다.
중동전과 석유파동으로 장비, 자재값 치솟는 악재로 자금부족에 시달리다가 부도남.
이틀 후 이건희 동양방송이사가 인수함.
강박사가 기술을 지원하는 조건이었음.
3.
1975년 흑자전환 쾌거
판매한 제품은 손목시계용 반도체, 후일 삼성이 1메가 D램 만들때 고심하던 CMOS 기술을 사용한 것.
강박사는 반도체의 개발 생산 판매 가격 사이클을 알기에 걱정해, 시장 봐가며 제품을 선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삼성파견 일부 경영진과 강박사 간에 견해차 발생, 1976년 강박사는 한국반도체를 떠남.
4.
이후 한단계 낮은 TR과 TV용 IC양산 하다가 예상대로 참패.
1979년 다시 시계용 칩 팔다가, 컬러tv용 IC 국산화 성과 올렸지만 뭔가 부족함.
5.
1982년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사업 시장조사결과, 당시 미국보다 일본이 유일하게 앞선 분야인 메모리반도체 쪽으로 결정,
D램 위주로 감.